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(문단 편집) == 마무리 == [[대한민국 국군]]은 [[북한군]]을 6일이나 막아내 [[미군]] 참전의 시간을 벌었다. 한편으로 이 전투에서 한국군은 북한군이 보유한 전차에 대한 공포증을 상당부분 털어버리고 귀중한 대전차전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. 또한 정부가 대전에서 부활[* 거짓말은 아닌게 6월 28일 대전에 위치한 정부는 [[이승만]] 대통령과 보사부장관, 서울시장 [[이기붕]], 충남도지사밖에 없는 참담한 구성이었는데 한강선에서 시간을 벌고 피난민을 호위해서 정부 구성원들이 모일 시간을 만들었다.]할 시간을 만들어 후방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성공했다. 참고로 당시 북한군의 예정대로 전쟁이 진행이 되었다면 한국군은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었을 터였으나, 정작 [[춘천-홍천 전투]]에서 한국군 6사단에 의해 북한군 제2군단이 발이 묶이고 2사단은 '''아예 전력의 40%를 손실,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하는 일이 발생해''' 계획에 차질이 생겨 서울과 춘천 양쪽의 북한군이 어물쩡거리게 되었고 김포사령부의 영관급 지휘관들의 분전덕에 김포지역에서의 북한군의 진출이 저지당하였기에 한국군은 재편제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. 서부전선이 붕괴된 상태에서 동부전선까지 무너졌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. 병력과 화력이 부족하지만 목숨바쳐 싸운 김포사령부와 6사단의 분투 덕분에 한국군은 서부전선을 재편제할 시간을 얻었다. 자세한 건 [[춘천-홍천 전투]] 문서를 참고. [[분류:6.25 전쟁/전투]][[분류:1950년 전투]][[분류:한강/사건 사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